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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우리는 어디에서 인간성을 찾을 것인가."

 필자는 5명이 함께하는 독서토론 모임에서 꾸준히 책을 읽고, 줌*을 통해 만나 책을 읽고 떠오른 논제와 질문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 모임이 되는 것 같다. 이번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그때는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읽게 되어 기분이 좋으며 뜻깊다.

본인이 읽은 책의 표지이다. 생산 라인에 진열되어 있는 듯한 어린이의 얼굴에 눈길이 간다.

 책 속 등장하는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멋진 신세계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은 욕구가 완전히 채워진 상태로 존재한다. 세상 그 누구도 불만스럽지 않다. 만약 불쾌하다면 '소마'라는 알약 반 그램만 먹으면 이 세계와 영원히 먼 저편에서 행복을 누리고 몇 시간 후 돌아올 수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그 누구도 늙지 않는다.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구매한다. 세상 그 무엇도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있다. 

 

 허나 현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이 세계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이 세계에는 '인간성'이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인간을 찾을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사회에서의 수요에 따라 재능과 발육이 결정되어 유리병 속에서 태어난다. 모든 사람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감마, 델타 그리고 엡실론 계급의 사람들은 유리병 속 태아 시절 특수한 처리를 거쳐 하나의 태아로부터 8명 내지 80명 정도의 태아가 나오도록 한다. 또한 이러한 하층 계급 사람들은 지능과 발육 상태를 제한하기 위해 유리병 속에 알코올을 첨가하고 산소 공급을 제한한다. 태어난 이후에는 습성 훈련실에서 하층 계급 사람은 파빌로프 조건 형성 이론을 이용해, 책과 꽃과 전기자극의 고통을 연결하게 되며, 이들은 자라나 책과 꽃을 생각만 해도 역겨워하게 된다. 모든 이들은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잠자는 침대 맡에서 수천만 번의 사회화 세뇌 문구를 듣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람들은 사회라는 전체 속 하나의 나사가 되며, 60년 동안 닳지 않고 존재하다가 태어난 지 60년이 되면 사망 처리된다.

 

 

 이 책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를 상징하는 '야만인'이 등장한다. 야만인은 신세계에서는 사라져 버린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종교적이며 고전적인, 금욕주의적 가치를 믿는다. 야만인은 신세계의 이모저모를 둘러보지만, 도저히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역질 나는 신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미쳐버렸다. 야만의 세계에서 외로움을 겪으며 살았으며, 신세계에 가는 것을 수없이 꿈꿔왔던 그였다. 그는 역겨운 신세계를 떠나 혼자만의 삶을 누리려 하였지만 결국 끝없이 신세계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지구 전체를 집어삼켜버린 신세계에 그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책의 끝무렵에 나오는 세계 통제관과 야만인의 대화는 각각 야만인과 신세계로 상징되는 현대의 우리와 미래의 전체주의적 사회 사이의 대화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유럽 대륙 전체를 통제하는 임무를 갖고 있는 세계 통제관은 지금 이 세계에는 가치 있는 것이 없으며 인간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나 그는 모든 이가 행복하며 모든 이가 자신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부족하지 않고 모든 것이 넘치지 않는 지금 이 상태를 위하여 세계는 가치를 희생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안정되고 질서 있는 세계,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며 모두가 행복한 이 세계, 허나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 한낱 몸뚱이들만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내가 쉽사리 전자를 긍정할 수 없는 것은, 정말로 전자에서는 인간이 아닌 몸뚱아리밖에 찾을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기존의 가치 체제 속 사람이 갖을 수밖에 없는 관성 때문인가?


 이 책을 읽고서 다음 두 질문을 생각해 봤다. 누구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1. 행복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과학자들은 흔히 행복은 신경계의 전기화학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설명하며, 행복을 마약이나 호르몬 투여 등의 화학적인 방법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허나 이는 행복을 단순히 우리가 행복한 상태에 있을 때의 기분과 정서에 관해서 설명한 것일 뿐이다. 이 기분이 행복의 전부일까? 아니면 행복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일까? 행복을 화학적 상태로만 설명해도 될까? 어쩌면 이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어져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인간성을 갖춘 인간이 추구할 지상으로서의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2.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굳건한 계급 사회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어지는 세뇌적인 사회화교육은 현재의 우리가 보기에 다소 비인간적이며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허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사회화 교육과 현재 우리가 아이들에게 실시하는 도덕 교육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입되는 사회의 가체 체제와 도덕 체제와 세계관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덕관념과 사회 관념, 가치 관념과 예절 관념은 긍정하고, 멋진 신세계 속 사회 안정을 위해 체계적이고 절대적으로 실시되는 가치교육과 도덕 교육을 거부할 절대적 잣대가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멋진 신세계의 사회화 교육을 거부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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